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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ITICS

Jina Kim
Becoming - Difference between Repetition (KOR) / over.flow.ing 2008

김진아

생성(Becoming) - 반복과 차이

개인전 서문, over.flow.ing

북촌미술관, 2008

   

신수진은 곡식알이나 나뭇잎, 꽃잎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을 일일이 새겨놓은 판 하나를 한 평면 위에 찍고 되찍고 수 겹을 더해서 한 화폭을 완성시키고 있다. 얼핏 보면 큰 변화 없어 보이는 그녀의 작품은 실제 모네의 수많은 수련 연작처럼 색과 나뭇잎, 꽃잎 모듈이 어떤 방향에서 얼마만큼의 농도로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복되어 표상화되는 것이며, 작품마다 다른 연작이 되어 반복된다. 즉 신수진의 무늬들은 차이로 인해 반복된다. 똑같은 판이 사방팔방의 각도로 겹쳐 찍힌 차이들이 캔버스, 화선지 하나하나에 반복으로 새겨지는 것이다. 얼핏 보면 비슷한 형태의 화폭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모듈에서 출발하여 제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다: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되어 되돌아온다.” 신수진이 일전에 지적했던 대로 이러한 반복과 변화의 미학은 들뢰즈를 연상시킨다.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란 정적인 두 상태에서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두 상태가 교차하고 섞임으로써 생성되는 것이며, 그녀의 판은 수 번, 수 십 번 교차하며 반복적으로 찍혀나감으로써 미묘한 다름을 보태어가며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복차이의 미학을 가장 적절히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신수진의 작업은 전통 판화나 디지털 매체의 매끈한 프린트 기술이 지향하는 차이 없는 반복이 아니다. 벤야민이 강조했던 기술복제시대의 생산이나 작품의 배분과 소통을 꿈꾸는 반복도 아니다. 대량 복제처럼 혹은 습관처럼 차이 없이 돌아오는 반복이 아닌 것이다. 한편 복제의 메커니즘을 앞장세워 원본을 비평하거나 해체하기 위한 비평적-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했던 반복, 혹은 복제의 담론(discourse of copy)과도 거리가 있다. 회화와 변별되는 판화 고유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반복과 복제의 미학을 고수하면서도 작품 하나를 꽃피우기 위해 수십 번의 판을 다른 각도에서 다양한 색을 입혀 찍어내고 있으며 그리하여 완성된 작품은 각기 다른 차이의 모습이다. 오리지널리티, 즉 원본성이나 독창성을 굳이 상쇄하거나 파괴하려는 의도도 아니며 그렇다고 복사물도 아닌, 생성창조의 바탕이 바로 반복차이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도이다.  

  끝없는 차이를 생성하는 움직임으로 그녀는 정성스럽게 판을 만들고 찍고 있다. 드라이포인트와 에칭을 응용한 기법으로, 손수 낱알낱알 새겨 넣어 만든 판을 정성 들여 수십 번 반복하여 찍어낸다. 이번 전시에 걸린 푸른빛 대형 작품은 100여 번의 판이 찍혀 완성된 것이라 한다. 회화와 달리 작가의 손이 직접 화폭에 새겨지지 않는다 해서 예술보다는 기술의 측면이, 매체의 목적이 처음부터 복수적 분배였다는 점에서 근대미술에서 항상 서자 취급을 받아왔던 판화, 그녀의 작품은 이러한 판화가 가지고 있는 기술성, 장인정신, 복수성을 발전적으로 지켜내고 있으면서도 오늘날 생산되는 그 어떤 그림들 못지않게 혹은 훨씬 더 오랜 작업 시간을 통해서 영글어가는 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10여 년전 저녁 무렵 대학원 실기실을 지나칠 때면 항상 보이곤 했던 실기실 지킴이들 중에 그녀가 있었고, 지난 2-3년간 강사로서 박사과정생으로서 그녀는 다시 서울대 실기실에 둥지를 틀고 묵묵히 작업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대를 찾는 날 항상 작업 중 이거나 하다못해 작업실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그녀가 있어 든든하고 반가웠다. 어쩜 그녀는 자유와 감정의 분출로 그려지곤 하는 낭만적인 예술가상과는 정 반대선상에 서있는 모범생 작가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실함과 고도의 집중력이 오늘날의 신수진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신념 있게 고수하면서 판화 기술을 차곡차곡 연마하고 응용, 발전시켜오고 그녀의 판화 기술은 어쩜 판화 전문가가 아니고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발전일 수 있다. 하지만 곡식 낱알, 나뭇잎 등 자연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들에 대한 직관적인 관찰과 더불어 기술적 완성도와 섬세함을 높이는 성실한 작업방식이야 말로, 단순한 듯하되 극히 복잡한, 밝고 경쾌한가 하면 다양한 색점이 화폭의 밀도를 꽉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신수진은 매체의 특수성과 질(quality)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있어서는 모더니스트적인 태도를 놓아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판화가 가진 근대적 특징들을 비평적으로 고수하면서 새로운 반복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고, 자연에 대해 삶에 대해 예술에 대한 사라진 단순한 진실에 대해서 되묻고 있는 듯하다

   신수진의 손맛과 유일무이한 결과물이 전통적 판화로부터의 이질적인 면모라면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한층 더 회화 같은 판화로 다가서고 있다. 우선 색과 모듈의 밀도가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짙어졌다. 작년 개인전에서 보여 졌던 한지 작업들과 달리 이번에 전시된 많은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펼쳐져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강조하였고, 원형과 타원형 등 구심적 형태의 형상 대신에 초록빛 잔디와 푸른 바다, 꽃봉오리로 보이는가하면 불꽃처럼 타오르며 아스라이 사라져가고 있는 개방적 형태로 이행하고 있다. 즉 작년 전시에서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깔끔한 형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보다 자유롭고 감성적인 형태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한편 개방적인 형태들과 더불어 화폭의 종류 또한 확장되어 있다. 스텐실 작업으로 갤러리 벽을 직접 수놓고 있는 작품은 벽 귀퉁이의 3면을 모두 이용하면서 마치 꽃나무처럼, 불꽃처럼 타고 올라가고 있고, 월페인팅(wall-painting)과 판화의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걸어놓은 남보라빛 계열의 작품들은 한층 더 회화적인 느낌으로 다가서는 실험이다. 캔버스 작품들과 작업 방식은 같되 실크천 위에 판을 찍은 다음 그대로 천을 널어놓은 마냥 전시한 이 작품들은 찍는 화폭의 재질에 따라 형상들이 얼마나 다르게 생성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굳이 들뢰즈를 언급하지 않을지라도 그녀의 그림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자연학에 닮아 있다. 그녀가 찍은 나뭇잎, 꽃잎, 바다 등의 사진(이들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드로잉 역할을 하고 있다)을 보면, 추상적인 형태로 보이는 작품들이 얼마나 구체적인 자연의 모습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본 모듈이나 전체적 형상은 매우 단순한가하면 무한히 복잡하고, 한 가지 모티브가 무수히 반복되고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 모습은 규칙적인가하면 거친 인상주의자들의 붓자국처럼 불규칙적이다. 거대한 성단(星團)의 모습을 담고 있는가 하면 지척에 흩뿌려진 꽃잎과 풀잎인가 싶다. 즉 그녀의 작품은 그 물리적 크기(size)가 아니라 감상자가 바라보는 심상의 크기, 사물을 바라보는 스케일(scale)에 따라 작동되는 하나이나 동시에 수많은 모습의 새로운 표면으로 아름답게 그 곳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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